건축의 미학(美學)-①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제주 구좌읍 '사랑(舍廊)채'
- 다혜 이
- 2024년 7월 2일
-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8월 30일
건물이든 사람이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6월 초쯤 제주 안 갈래?"
"뭐하러?"
"아우라 내뿜는 건물 보러"
"...."
제주 동쪽 구좌읍 하도리 '사랑채'. 이 건물 한 채를 보기 위해 제주를 찾았다. 건축쟁이는 아니지만, 그가 '심혈'을 기울여 시공했다는 건축에 얽힌 이야기들을 듣고 실물을 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서다. '그'는 사랑채를 시공한 오아시스종합건설 대표 이종진이다.
성산으로 향하는 간선도로에서 구좌읍 하도리로 들어서니 사위가 한적하다 못해 고요하다. 개발이 되지 않은, 한가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조금 전 떠나온 도시는 이른 불볕더위로 야단법석인데 이곳의 한낮은 선선하기만 하다. 차창 밖의 풍광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도, 그리 수려하지도 않은 흔한 섬의 그것이다.
인적도 바람 소리도 없는 이곳에서 홀연,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멀지 않은 곳에 돌담과 바다를 배경으로 무심한 듯 자리한 흰색 건물이 눈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제멋대로 생긴 돌담과 밭들에 붙어있는 백색의 건물. 창 하나 보이지 않는 하얀 건물의 뒷 모습과 주변의 풍광이 함께 자아내는 묘한 기운은 마치 세상일 남의 일 보듯 무심한,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둔 듯, 시작도 끝도 없는 무중력의 공간을 유영하는 우주인의 느낌을 갖게 했다.
물아일체의 경지가 이런 것일까. 가슴에 와닿는 이 기묘한 정경에 넋 놓고 그저 바보처럼 멍하니 한동안 바라만 보았다. 마치 '다른 공간, 다른 삶'의 차원에 들어선 듯한 느낌에 머리가 하얗게 비워져 멍해진 것이다. 시간의 흐름은 공간이나 사람에 따라 빠르게 혹은 느리게 흘러가거나 멈추기도 하는 것인가? 빠르거나 느리게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영화 뿐인데, 지금과 같은, 흘러가는 순간을 붙드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바라보니, 저 하얀 건물 하나가 공간을, 분위기를 바꾸어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조형한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되고 익숙한 풍경과 새로운 건물이 만나 독특한 풍광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저 자리에 저 건물이 있어서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집이나 건물이 그곳의 경관과 함께하면서 서로 밀접하게 엮여간다는 사실은 정말 중요하다. 자연과 어우러져 고향 같은 친근감을 주지 못하는 집과 건물은 자칫 보기 흉한 얼룩처럼 되어 어울리지 못한 채 이방인처럼 보이게 기 때문이다.
건축주도 어느 정도까지는 건축가이다
흰색은 모든 빛의 총화이다. 하얀 접시에 올리는 음식은 무엇이든 돋보이듯이 ,흰색은 모든 색과의 조합에서 조화롭게 잘 어울린다. 외벽 전체가 흰색으로 되어 있을 때 우리는 삭막한 느낌 보다는 즐거움, 풍요로움을 느낀다. 사랑채의 외벽은 모두 흰색의 돌가루로 만든 세라믹 타일로 시공했다. 전부 스페인에서 들여온 것들이다. 색과 심리가 연결되는 고리는 '감각'과 '정서'이다. 색 때문에 마음이 영향을 받는다. 정서적 상태에 따라 흰색이 슬퍼보일 때도 있고 지적인 유희를 느낄수도 있다.
바깥에서 건축 구조에만 관심을 두고 기웃거리다 건물 뒷 정원에서 채소 모종을 옮겨 심고 있는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사랑채 주인 최현숙대표이다.
대부분의 건축주는 어느 정도까지는 건축가이다. 상상하고 바라는 대로 집이나 건물을 지으려면 건축을 알아야 한다. 최대표가 제주에 건축을 계획하면서 가장 공들인 것은 건물도, 내부전시실도, 정원도 아닌 그것이 자리할 주변 자연과의 조화였다고 한다.
"20년 정도를 틈날 때 마다 제주도를 다니며, 제주도에 어울리는 멋진 집을 짓고 싶었습니다. 제주도의 곳곳을 다녀보았지만, 종달 수국길이 있는 하도 해변만큼 아름다운 해안뷰를 가진 곳이 없었습니다. 2020년 즈음 2년 가량 땅을 보러 다니면서 이곳이 가장 제주다운 바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에는 배의 불빛과 우도의 불빛으로 야경이 아름답고, 낮에는 해녀들이 바다에서 작업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운이 좋다면 돌고래와 바다위에 떠 있는 무지개도 보이는 멋진 해변입니다."
첫 인상에 마법과 같은 충격(시간멈춤)을 받았다고 전하자, 최대표도 같은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장소를 정했으니, 어떤 집을 지을지가 다음 고민이었습니다. 20권이 넘는 세계의 멋진 집들을 쭉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집스타일을 고민했습니다. 아무리 들여다 봐도 저의 취향은 아기자기가 아니라, 모던하고 깔끔한 매시브한 스타일의 도형같은 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 그런 집이 어울릴까 고민이 되었는데, 모형을 보고서는 무밭으로 둘러싸인 이 곳에 파란 바다와 이질적인 매시브한 도형의 집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집이 아니라, 꿈에 본 듯한 느낌의 집이랄까요? 왠지 몽환적인 느낌이 나는 집입니다."
사심없이 주의깊게 보면 보인다. 건축주와 설계자, 그리고 시공자가 얼마나 세세한 부분까지 관심을 기울였는지. 건들거리는 눈빛으로 보면 놓치는 것들이다. 내부의 조명 배치, 벽과 조화를 이룰 타일색, 나사못 하나까지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협의했을 것이다. 그런 낮밤이 모여 마법같은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제주에서 집짓기
최대표가 '마당'이라고 부르는 정원에는 오래된 절로 향하는 길에 놓여 있을 법한 돌탑과 비슷한 모양의 돌 정물들이 햇빛을 쬐고 있다. 햇빛을 튕겨내지 않고 품고 있는 바위들과 그 너머 푸른 바다가 묘한 조화를 이루며 호젓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하도리는 노을이 아름답기로 손꼽이는 곳이다.
"제주도는 상하수도가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마을이 만들어집니다. 집앞의 하수도까지의 거리가 멀어서 땅을 7미터나 파야했는데,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돌들이 나왔습니다. 그 돌들을 멋지게 마당에 아트작품으로 만들어 올린 과정이 정말 재미있고 아름다웠습니다. 돌이 해를 거듭할수록 검게 변해가고, 새들이 올라 앉아 쉬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제법 바람이 세게 불 때는 나무 보다는 돌이 마당에 있는 것이 안정감이 있어 좋습니다. 그리고 마당의 큰 돌 작품이 있다보니, 이 장소가 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윗집 따님도 우리 집 마당에서 결혼하고 싶다고 해서 야외결혼식을 이 마당에서 했습니다. 덕분에 정말 복있는 마당이 되었습니다."
땅만 파면 돌덩이투성이란 애기다. 발파로 돌들을 부술 수 없기에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꺼내야 했다. 제주에서 집짓는 일은 품이 많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을 재테크 수단의 하나로만 생각한다. 최현숙 대표의 집에 대한 인식은 채움을 위해 비어있는 공간을 만드는 예술이다. 건축하는 내내 신나고 행복했다고 한다.
"마당을 거닐며 꽃들을 구경할 수도 있고, 제주다운 바다멍, 불멍, 하늘멍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사랑채의 사랑은 LOVE의 사랑이 아니라, 舍廊 즉 집의 안채와 떨어져 있는, 바깥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곳 이라는 의미입니다. 손님들이 오고 좋은 시간을 보내며 아름다운 각자의 공간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곳입니다. 쉼과 놀이, 그리고 아름다움을 누리는 공간입니다."




건축주, 설계자, 건축시공자의 만남
그는 이런 생각과 의도를 '차질 없이'실현시켜 줄 건축시공사를 찾았고, 많은 후보와 그만큼의 고려끝에 오아시스종합건설을 선택했다. 그리고 건축사 이종진은 건축주의 뜻에 더하여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감성에 의존해 상상력을 발휘하고 자신만의 특별한 건축언어로 '사랑채'를 완성해 낸 것이다.
건축물에 주위를 둘러싼 자연에 담긴 생명의 가치와 다양한 이미지를 재해석하고 품은 뜻을 헤아려 깊이 있는 의미를 녹여 넣은 것이다. 우리는 그 진정성을 그가 건축한 건축물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은 선장의 잘못이다. 의도와 달리 엉뚱한 건물이 들어서는 것은 건축주가 설계와 시공자를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다. 최대표는 자신이 상상하고 소망하는 건물을 위해서 자신의 의도를 빈틈없이 반영할 수 있는 설계와 그 설계를 실물로 만드는 믿을 수 있는 시공자가 필요했다.
좋은 건축시공자
최대표는 넘쳐나는 건설사 중에 오아시스종합건설을 선택한 이유로 '신뢰할 수 있는 좋은 건축시공자'를 꼽았다. 현실과 (건축주,설계자,시공자 자신의)신념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놓고 이것을 시공자가 어떻게 요리하는가를 보면 좋은 건축시공자를 감별해낼 수 있다고 한다.
건축주와는 달리 건축시공자에게 시장은 양날을 가진 칼이다. 한편으로는 세상과 소통하고 생존해가는 방편이지만, 현실에 막혀 시공자의 감성과 상상력에 깊은 상처를 안길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건축시공자란 현실이란 까다로운 변수에도 자기거리를 유지하면서 긴장감 있게 작업하는 건축가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수 많은 건축시공자 중에서 생명력이 긴 시공자를 찾기는 쉽지 않은 문제다. 다만 신뢰, 전문성, 과거 시공사례 등 필요한 몇가지 핵심 변수를 매개로 하여 심사숙고하다 보면 분명 그들 중에서 이런 시공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건축의 미학(美學) 다음 글은 '사랑채' 건축과정을 통해 '내 집 짓다 망치지 않는 방법'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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